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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 2일 목요일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 1864~1946)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Alfred Stieglitz, 1864 ~ 1946)의 사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20세기 근대사진의 아버지’라 불리우며, 사진예술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는 미국 사진작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사진가협회인 ‘Photo-secession’창립자 겸 ‘Camera Work’발행인, 편집인이었다. 

    스티글리츠는 회화주의 사진에 반대하여 사진은 리얼리즘에 철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진 본래의 순수적인 기록성을 되찾자는 취지의 ‘사진 분리파 운동’을 일으키고, 사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능력을 인정하여 대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스트레이트 포토'를 제창한 근대사진의 선구자이며, 스냅 의 창시자다.

    작가 연보
    - 1864년  미국 뉴저지에서 출생
    - 1971년  6세에 뉴욕으로 이사
    - 1881년  16세에 가족모두 유럽으로 건너감
    - 1887년부터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
    - 1890년  미국으로 돌아와 사진 활동
    - 1897년  기관지「카메라 노트 Camera Notes」창간
    - 1902년  사진분리파 (Photo-Secession) 운동 전개
    - 1903년  기관지 「카메라 워크 Camera Work」창간
    - 1905년  291화랑 1917년 「카메라 워크」와 사진분리파 운동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림
    - 1946년  세상을 떠남
      

    Winter on Fifth Avenue,New York, 1893




      



    Hands (Georgia O_Keeffe)


     16억원의 고가에 경매된 작품이라 한다.








    o'keeffe (hands)










    The Terminal, New York,1892










    3등 선실 (The Steerage, 1907)










    Nude (Georgia O_Keeffe)


    14억원의 고가에 경매되었다는 작품









    1864년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Alfred Stieglitz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미국 예술사진운동을 이끈 주도자였다.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의 배려로 유럽에서 1882년 ~ 1890년까지 9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였다.

    그는 베를린 공과대학에서 전기 기계공학을 전공하던 중 1883년 사진 화학자인 포겔(H.W. Vogel)교수의 사진 실험실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2년 후 사진 화학을 전공하였다.

    미국으로 돌아온 Alfred Stieglitz(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1902년 Photo Secession(사진 분리파)을 결성, 사진 그 자체의 순수한 기계적 기록성을 되찾자는 운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그의 생각은 다른 사진가들에게 사진적 리얼리티를 기초로 한 Straight Photography(스트레이트 사진)의 올바른 자각을 유도했다.  그가 주장한 ‘스트레이트 사진’이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대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곧은 의지의 산물이다.

    그는 Photo Secession(사진 분리파)을 홍보하고 회원들의 작품을 알리는 공식 기관지로 사진 저널인 'Camera Work (카메라 워크, 1903-1917)'를 발행, 연 4회 정기적으로 출간하였다.
    또한 자신이 벌이고 있는 운동을 전개할 전시공간의 필요성을 느껴 1905년 뉴욕5번가에 현대사진의 산실일 뿐 아니라, 미국 현대
    예술의 모태이며, 전위적인 예술혁명의 진원지가 된 Gallery 291(1905-1917)을 개관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그의 아내인 Georgia O'Keeffe (조지아 오키프)와 Paul Strand (폴 스트랜드)를 통해 예술과 사진을
    재발견하였고, 그 후 몇 년 동안 그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만 시간을 투자했다.  또한 그는 그의 초기 작품처럼 사진의 순수성과
    자연주의적인 특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1887년 런던 The Amateur Photographer (아마추어사진가)가 개최한 경연대회에서 P. H. 에머슨이 수여하는 을 받았다.
    또한 1924년  왕립사진협회 명예회원이었던 스티글리츠는 미국 사진학교의 지원과 양성, Camera Work 창시와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발행, 그리고 사진이 가지고 있던 모든 예술적인 기록들을 뛰어 넘었던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주는 The Society's Process Medal (협회 진보 메달)을 수했다.

    1933년 그는 자신이 수집한 사진 분리파 회원들과 다른 회화주의 사진가들의 600점이 넘는 사진들을 뉴욕에 있는 Metro politan Museu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snapshot from my window, new york, 1907









    a venetian canal,1894











    Snapshot - In the New York Central Yards, 1903












    the street-design for a poster from camera work, 1903








    a venetian well, 1894







    early morning, 1898









    Un Jour de Pluie a Paris








    watching for the return,1890

















    Flatiron Building, 1902







    Icy Night, 1898









    The Asphault Paver, New York, 1892








    Horses,1905








    katherine.1905







    The Swimming Lesson, 1906








    The City Across the River, 1910








    The Aeroplane, 1910

    사진분리파는 그가 새로 조직한, 사진의 새로운 가치를 표명한 선언으로 20C의 분수령을 넘는 역사적 자각운동이다.
    당시 미국의 작화 경향도 영국의 회화적사진을 모방하여 연초점 묘사와 인화 수정을 행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으나 여기서 탈피하려고 항상 생각하고 노력했으며, 사진기와 렌즈의 감광유제의 기본적 성질도 엄격히 살리려고 노력했다. (공과대학출신 사진화학공부)

    사진분리파운동을 하기 위해 1903년 카메라워크란 기관지를 창간하고, 1905년에 포토291이라는 화랑을 열었다.
    화랑291은 현대사진의 산실일 뿐만 아니라 당시 미국의 현대미술의 모태가 되었다. 이 화랑이 당시 미국의 전위적인 예술혁명의 중심이 되자 1917년을 고비로 사진분리파운동은 일단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 까닭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독일계 이민인인 그에게 모든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 때문이다.

    사진 분리파운동이 내건 순수사진이란 다게르가 사진 발명 당시에 신봉한 순수한 기계적 기록성을 되찾자는 것이었다.
    즉 렌즈가 본래 갖고 있는 정확하고 정밀한 그리고 광학적인 기능을 사진의 기본으로 다시금 다짐하자는 것이었다.

    스티글리츠의 사진미학은 사실주의에 역점을 두고 있다.
    사실주의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재현하는 훌륭한 예술이 될 수 있는 주의이다.
    사진 분리파운동으로 스티글리츠는 새로운 사진적 Reality를 기초로 한 Straight 사진의 올바른 자각을 유도했고 사진의 기록성에 관한 의미를 인식시켜 기록에 있어서의 예술성이란 문제를 제기하게 하였고, 그의 개성 있는 시각은 많은 사진가들에게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사진의 눈을 현실 한 복판으로 돌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동시에 보는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끌어내는 사진의 은유적 상징성, 즉  <이퀴벌런트 Equivalent>를 통한 자각은 Paul Strand와 F64 그룹으로 이어지는 오늘날 젊은 사진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뚜렷한 맥을 이루었다.
        

    equivalent 1










     
    equivalent 2










    equivalent 3 


    스티글리츠의 사진세계는 1917년을 기점으로 누구보다도 뚜렷하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스티글리츠가 전기에 보여준 사진은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사회적 현실을 표현하였고, 후기에는 단순한 사실주의에서 한 단계 나아가 은유적 사실성을 중심으로 자신의 감정이입을 더한 작품을 선보였다.

    스티글리츠의 전기를 대표하는 사진으로는 <삼등선실 The Steerage>, <5번가의 겨울 Winter on Fifth Avenue>, <종점 The Terminal>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1907년 <삼등선실>은 그의 전기 작품 중 사실주의를 가장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가 유럽여행을 위해 호화 여객선 '카이저 빌헬름 2세' 의 일등갑판 산책 중에 찍은 사진으로써 특등실과 삼등실의 대조를 통하여 우리 삶의 모습 을 대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주의에 입각한 사진에서의 예술표현은 미적 추구가 아니라 진실,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인 <삼등선실>은 1893년에 촬영한 <5번가의 겨울>에서와 같이 모든 것이 작가의 의도 대로 균형이 잡힐 때까지 참고 기다린 것과는 달리 스티글리츠가 주제나 형식면에서 즉각적인 인식을 함으로써 이루어진 작품이다.

    후기를 대표하는 사진으로는 1920년대부터 구름을 주제로한 <이퀴벌런트 Equivalent> 시리즈를 들 수 있는데,  '이퀴벌런트'는 '동등한 것',  '대응하는 것'이라는 뜻으로서, 자신의 내면적 생각과 동등한 것을 구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구름을 통해서도 작가의 사상, 희망, 열망, 공포 등과 등가를 이루는 표현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퀴벌런트 시리즈는 대부분 4×5인치 그라플렉스 카메라로 찍은 것으로 깊은 흑색조와 작열하는 백열빛, 그리고 어렴풋한 회색빛이 어우러져 형식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정물의 클로즈업을 통하여 정밀묘사도 구사하였는데, 정물의 극단적 접근으로 인하여 정밀묘사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부분을 통해서 전체적인 암시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도 선보였다.
    1930년대에는 스티글리츠가 건강이 악화된 관계로 야외에서 촬영하기 힘들어지자 높은 건물에서 그가 자라난 뉴욕을 배경으로 건물을 촬영하는데 열중하였다.  
    만년에 '디 인터미트 갤러리, 어메리컨 프레이드'라는 화랑을 차렸다.
     1903년에 창간된 카메라워크는 초기에는 사진 위주의 편집을 했으나, 점차 모던 아트을 확산시켜 로댕, 마티스, 로트렉, 고갱 등의 작품을 소개하며 1917년 50권을 발간할 때까지 최고의 인쇄술로 Quality Magazine의 권위를 지켜 나갔다.



     
    Apples and Gable, Lake George, 1922








    Dancing Trees, 1922








     





    Two Towers - New York , 1913







    From the Shelton, West, 1935








    Georgia O'Keeffe.







    Georgia O'Keeffe.1922








    Georgia O'Keeffe, 1918








    Georgia O'Keeffe.







    Georgia O'Keeffe. 1918







    
    John Marin, 1922








    Portrait of Marcel Duchamp,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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